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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8-01 0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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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전 10시30분 도선사에서 영결식과 다미식 참석하고 있는 내빈모습.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도선사 분양소 모습.

▲지난달 29일 오전 12시 도선사에서 다미식 진행하고 있다.

불교계 큰스님인 청담학원 설립자 혜성(慧惺)스님이 열반해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서울 도선사에서 영결식과 다미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박겸수 강북구청장,도봉을 오기형 지역위원장(더불어 민주당 국회의원내 대표 비서실장)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장 황명규.등 각계 각층의 인사들과 스님, 신도 등 약2.000명이 참석했다.


정양석 강북갑(자한당 국회의원), 김선동 도봉을(자한당 국회의원),천준호(강북갑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은28일 다녀갔다 고 도선사 관계자는 말했다.


혜성 스님은 열반에 앞서 "백운대 밑 수행자 있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산을 뚫어 (도량을) 세웠네/ 다음 생에는 어두움 벗어나/ 굳센 뜻 부지런하여 마음의 왕이 되리라(白雲下一僧 惜心建通山 次生再出盲 丹志及心王)"라는 임종계를 남겼다. 혜성스님은 법랍 62년, 세수 82세이다. 193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혜성 스님은 청담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7년 조계사에서 사미계를, 1962년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서울 도선사 주지로서 수행과 포교에 매진한 스님은 제3·4·9·10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사회부장 등을 맡기도 했다. 또 1980년 도선사 주지 시절 10·27 법난을 당해 고문 등 온갖 고초를 겪기도 했다. 중앙승가대가 4년제 정규대학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한 혜성 스님은 혜명보육원과 혜명양로원을 설립·운영했으며 학교법인 청담학원을 설립해 교육사업에도 앞장섰다.


혜성 스님은 2012년 10월 청담문도회 문장으로 추대됐으며 그동안 청담학원 명예이사장, 혜명복지원 명예이사장 등을 맡았다. 2016년 4월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 혜성스님 수행 60년 화보집 발간


한편 혜성스님의 수행 60년, 인생 80년을 담은 화보집이 열반 전에 발간된 바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도선사(주지 도서 스님)와 진불장 혜성대종사 문도회는 혜성 대종사의 산수(80세)를 맞아 576쪽 짜리 《화보로 본 진불장 혜성 대종사 - 인생 80년, 수행 60년》을 발간했다.


화보집은 출가 전 사진이 담긴 '1부 모서'에서부터 고교 졸업 후 상경해 청담 대종사를 은사로 모시게 된 인연을 비롯, 출가 초기의 이야기와 시진을 담은 '2부 출가' 등 총 9부로 구성돼 있다. 특히 조계종단의 공직을 맡았을 당시(4부 공심)와 청담중고교 설립 운영과 1980년대 후반 중앙승가대학장을 두 차례 역임한 과정(5부 인재불사) 등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작은 암자였던 도선암이 지금의 도선사로 발돋움하기까지의 과정과 혜성 대종사가 10.27법난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이야기도 실렸다.


편집을 총괄한 편집위원장 도권 스님(도선사 교무)은 "작년 6월 말 79세 생신 때 상좌들이 정성을 모아 스님 책을 만들자는 계획을 수립하고 올해 1월 화보집으로 방향을 바꿔 앞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우여곡절 끝에 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혜성 대종사는 책의 서문에서 "사심보다는 공공 이익과 종단 미래를 위한 공심을 한시도 잊은 적 없다"면서 "삶을 돌아보니 그동안 선연과 악연이 모두 도반으로, 남은 세월 종단의 끝없는 발전을 기원하며 다음 생에도 수행자의 길을 걷겠다는 원력을 세운다"고 밝혔다.


▲편집인 장용석/사회부 장동섭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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