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법인(유한)서울센트럴 대표 변호사 김상배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척도는 매우 다양하다.
돈, 명성, 권력, 사회적 지위나 직업 등은 모두 나름 사회적인 성공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러한 것들이 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보다 더 의미 있고 오래 가며 값진 성공은 바로 ‘가족들의 인정과 사랑, 존경’을 받는 것이다.
가족은 우리가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성공과 행복이 아닐까.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그러한 삶을 통하여 가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은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이다.
6월은 보리와 감자가 익는 계절이다. 시골 밭에는 누렇게 익은 보리이삭이 긴 수염을 늘어뜨린 채 바람에 흔들린다. 요즘은 보리를 말하면 보리밥보다는 청보리를 말하고 4, 5월에 여러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청보리축제를 생각한다. 보리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 보리는 보리밥도 아니고 청보리도 아닌 누렇게 바짝 마른 보리이삭의 긴 수염이다. 그리고 온몸이 가렵고 깔끄럽고, 근지럽다.
어릴 적 보리를 베어 말린 후 보리 타작을 하는 날이면 보리이삭의 긴 수염은 아주 잘게 부서지면서 까끄라기가 되어 공기 속을 날아서 옷 속, 머리카락 속 구석구석으로 파고 들어갔다.
옷 속으로 들어간 까끄라기는 옷의 실올에 박혀서 옷을 벗어서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를 않았다. 보리타작을 하는 날은 옷에 박힌 까끄라기의 가려움으로 쉽게 잠들지를 못했다.
아버지께서는 유월의 땡볕에 흘러내린 땀과 먼지, 보리까끄라기로 범벅이 된 얼굴로 늦게까지 보리타작을 하셨다.
유월이 되어 감자가 나오면 어머니는 가끔 감자를 삶아 주셨다. 어머니는 닳고 또 닳아서 반토막이 된 낡은 숟가락으로 감자를 긁어서 껍질을 모두 벗겨낸 후 단맛이 나도록 ‘슈가’를 넣고 한솥을 삶아내셨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삶은 후 소금을 찍어서 먹어도 되련만, 어머니께서는 감자 껍질을 일일이 모두 벗겨서 삶으셨다. 더 맛있는 감자를 가족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어머니께서 큰 솥으로 가득 삶은 감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들을 비롯하여 우리 가족 13명의 한 끼 식사 겸 간식이었다.
또한 어머니는 감자가 나오는 계절이 되면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서 감자찌개를 자주 끓이셨다. 어머니가 끓인 감자찌개는 가족들 13명이 먹을 반찬이자 국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끓인 감자찌개만큼 맛있는 찌개를 먹어본 적이 없다. 요즘도 어머니 댁에 갔을 때 가끔 감자찌개를 끓여달라고 하면 “그 맛없는 걸 뭐하게” 하시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으로 바로 끓여주신다.
땀과 먼지와 보리까끄라기로 범벅이 된 얼굴의 아버지의 모습, 닳고 닳아서 반토막이 된 숟가락으로 혼자서 큰 바구니로 한가득 감자를 깎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 희생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족들을 위하여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우리를 키워내셨다.
30여 년 전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었다. 그때 연수원 동기생은 283명이었다. 몇 년 후부터 400명, 500명, 700명, 1,000명으로 합격자 수가 늘어났지만, 당시는 283명이었고, 6개 반으로 운영되었다. 그때 다른 반은 어떤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 반 47명 중에는 나 외에는 농부의 자녀는 없었다. 몇 명 안 되는 중소도시 출신들도 공무원이나 교사, 장사를 하는 집 자녀들로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고 자란 연수생은 없었다.
지난 봄에 장안의 화제는 단연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내 아버지, 내 어머니의 살아오신 모습이 자주 보여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아내 몰래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
아버지는 52세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나이가 같은 어머니는 올해 88세가 되셨다. 아버지는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고된 삶을 살다 가신 아버지, 그리고 언제까지나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를 진정으로 존경하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흔히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는 돈도 없고, 명성과 권력도 없는, 오히려 아무런 성취도 없어 보이는 힘들고 고달프기만 한 농사 짓는 농부로 사셨지만, 그러면서도 우리 5남매를 잘 키워내셨다. 그리고 우리 5남매는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
“폭싹 속았수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