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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내릴때면 2016-06-27
편집국 mink1895@naver.com

 

 

이예지(탄현중 3년)
장려상(4.19혁명국민문화제위원장)

 

 

나는 거리마다 흩날리며 춤을 추는 벚꽃잎이 내릴 때면 아주 오래된 나의 기억방 한 곳에 살며시 눈부치던 그 얼굴들이 떠오른다. 나의 오랜 기억방에서 잠잠자고 있던 이 오래된 이야기를 이제서야 끌어내 보려 한다.

 

 

그당시 나는 중학교 2학년 이었다. 나에게는 아주 똑똑하여 하마를 닮으신 아버지, 상냥하지만 사자같으신 어머니 그냥 독수리 같이 아주 못생긴 내 언니 언제나 강아지 같은 내동생 훈이.

 

 

우리가족은 걱정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애 대신 나에게 큰 아니 아주 큰 고민이 생겼다. 그 고민속 주인공은 호석이! 나는 호석이가 좋다. 이것이 나의 큰 고민이었다.

 

 

몇일이 흐른 후 나는 어김없이 학교를 다녀온 후 호석이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집으로 돌아오셨다. “다은아 어쩜 세상이 , 이 나라가 이렇게나 무섭게 변하였니...” 나는 어머니를 위로해들릴 수 없어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나는 가끔 호석이와 마산항에서 노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마산항에서 놀기로 약속했다. 마산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이 폭우 쏟아지듯 눈물을 흘리시며 내가 가까이 가자 바닥에서 무엇인가 밟혔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선배 '김주열' 오빠 였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력의 부정선거에 대항해 주열오빠는 마산시위에 참가했던 것이다. 그 환한 웃음이 오빠의 침묵속에 참기고 알았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를 위로해 드릴 수 있게 됐다. 위로 뿐만 아니라 이해가지 .

 

 

곧이어 언니까지 울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사실 우리언니와 주열오빠는 아주 오래된 동네친구였다. 몇일이 지난 후 언니는 단 한장의 편지를 남기고 가족의 곁을 떠났다.

 

 

“어머니,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저 같은 못난 딸을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주열이의 죽음이 침묵속에 잠기지 않게 저도 도와볼려고요. 곧 마산에서 시위가 한번 더 있을꺼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내동생들아 사랑한다.”

 

 

 


편지를 온가족이 읽자 총성이 연달아 크게 들렸다. 나는 부모님의 손을 뿌리친 채 동생과 밖에 나가 언니를 찾았다.

 

 

“언니 어딨어! 내가 콜라병에 간장 넣어서 미안해. 어디에 있냐고~”

 

 

내 소리가 온 동네에 퍼지자 멀리서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독수리 언니였다. 언니는 버스를 탄채 창문을 열어 나에게 웃으며 인사해줬다. 1분이 지났나 나는 동생의 눈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날 보며 ‘다은아~’ 이렇게 웃어주던 언니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빠는 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갔지만 언니는 그렇게 나를 가족을 버리고 주열이 오빠 품으로 떠났다.

 

 

이 마산시위로 4월 19일에 전국적으로 민주주의 시위가 일어났고 우리가족은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신문을 보시더니 서울로 올라가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어머니는. 반대하셨고, 아버지는 그렇게 시위가 종료된 후에야 서울로 올라가실 수 있었다.

 

 

아버지가 마산을 떠나가신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날 "따르릉" 큰소리를 울리며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고려대학교 교수셨는데 300명의 교수분들과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항의서를 만드시고 학교로 돌아오시는 길에 살기 가득한 폭력대들의 피격으로 제자 6명과 같이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민주주의를 외치시다 돌아가신거였다. 나는 언니도 아빠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언니와 아빠 그리고 주열이 오빠의 꿈은 이뤄졌다. 이것이 내 기억방에서 살며시 자고 있던 이야기다.

 

 

나는 꽃비가 내릴때면 아빠와 언니의 눈웃음이 샤랄라 꽃비내리듯이 떠오른다. 내 나이 76살이지만 419혁명에 대한 그 기억은 잊지못한다. 그리며 이제는 언니와 아빠를 이해한다. 더 좋은 나라를 더 좋은 세상을 주기위해, 청춘과 열정을, 심지어는 목숨까지 바쳐 민주주의를 소리쳐야했던 그 이유를 이제서야 나는 알게 됐다.

 

 

나는 어린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는 목숨까지 내놓으며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민주주의의 꽃인 투표를 해달라고 말이다.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는 건국의 재상 정도전은 망국의 재상 이완용은 뽑을 수 있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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