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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고향을 떠나 고향을 지켜준 용사들에게 서울북부보훈지청 보훈과 곽재희 2024-07-23
편집국 bukbu3000@naver.com


▲ 서울북부보훈지청 보훈과 곽재희

우리나라 말에는 ‘향수병’이라는 단어가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감기나 두통처럼 어떠한 질환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에 반드시 정착하지는 않는 시대가 되었지만, ‘고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포근하다. 비록 모습은 조금 변할지라도 그곳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또 편안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4월,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 이국의 땅을 밟아보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지만, 동시에 낯설고도 어색했다. 길을 잃어도 표지판의 글자를 읽을 수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과도 한 마디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다.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고, 때로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겨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인천공항에 내려 다시 한국에 왔음을 실감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하고 친근한 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편안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편안함을 택하는 대신,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로 향한 이들이 있다. 바로 6·25전쟁에 참전하신 유엔(UN)군 참전용사들이다. 비록 6·25전쟁을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학교나 미디어에서 당시의 참상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들으며 자랐다. 그리고 국가보훈부에서 근무하며 실제로 참전유공자 어르신들을 가까이서 뵈며 6·25전쟁이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전쟁에 나가 피 흘리며 싸운 분들 중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여름, 평소 구독하던 제작자가 올린 동영상을 한 편 보게 되었다. 6·25전쟁에 참전하신 어느 영국인 참전유공자께서 한국 음식을 드시면서 당신께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내용이었다. 당시 어린 소위였던 브라이언 패릿 준장님은 홍콩에서 군 복무를 하다 소속 부대가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몹시 기쁘셨다고 한다. 한국이 강제로 점거 당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곳에 가서 싸워 한국을 해방시키는 것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셨다고 한다. 


이분들과 같이 22개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고난에 빠진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족과 헤어져 돌아올 기약이 없는 먼 길을 떠났다. 폐허가 된 전쟁터에서 수많은 인원이 죽고 다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했음을 확신했다는 준장님과 동료들.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된 준장님은 한국의 모습은 전쟁 당시와는 몹시 다르다고, 손녀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을 좋아한다며 뿌듯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여전히 분단되어 있는 한국을 생각할 때면 늘 ‘일을 다 마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준장님의 말씀에는 더욱 마음이 먹먹해졌다.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유엔(UN)군 참전의 날’이다. 패릿 준장님은 지난 2018년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이하여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으셨다. 이제는 6·25전쟁을 생각하면 지청에서 뵈었던 여러 참전유공자분들의 옆자리에 옳은 일을 하고자 주저함 없이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 패릿 준장님의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에는 목숨 걸고 싸우신 국내외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나라가 과거에 받았던 것과 같이,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세계 평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70여 년 전 그 날, 우리의 고향을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지켜 주기 위해, 자신의 고향은 너무나 멀리 떠나오신 분들의 마음은 어땠을지 감히 생각해 본다. 낯설고 불편한 이방의 나라에서, 이토록 무더운 여름 날씨에 땀 흘렸을 젊은 용사들을 떠올려 본다. 잔인한 전쟁은 사람을 다치고 죽게 하지만,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신념은 그보다 더욱 강하다. 그 위대하고 깊은 사랑은 국가와, 인종과,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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